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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이 교보생명 명예상무

[장승규 기자의 영업왕 열전]강순이 교보생명 FP 명예상무
장승규 2006-02-13
장승규 기자의 영업왕 열전 ⑬/

“당신의 평생 관리를 맡기세요”

저녁 9시, 강순이(50) 교보생명 FP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았다. 워낙 바쁜 탓에 좀처럼 인터뷰 시간을 잡기 어려웠던 탓이다. 널찍한 방 앞에는 ‘명예상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20년 가까이 줄곧 보험판매 1~2위를 다퉈온 그를 회사 측에서 배려해준 것이다. 그는 외부 약속을 마치고 막 돌아온 길이라며, 굳이 사과 하나를 꺼내 깎았다. 일정이 빡빡해 저녁을 굶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시작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상대방과 한참 동안 부동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외국은행 지점장을 지낸 고객의 가족이라고 했다. 그가 보험에 가입시킨 고객은 죽었지만 10년 넘게 지금까지 가족들을 ‘보듬고 있다’고 했다. “인간관계란 그런 것 아니냐”며 웃는다.

매년 해외에 나간 고객 직접 방문

그는 1983년 대졸사원 공채로 처음 보험에 발을 들여놓았다. 직장단체 전담사원이었다. 당시 기본급은 20만원으로 짭짤했다. 은행원이던 남편 월급과 똑같았다. “영업이 뭔지, 보험이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으면…”. 하지만 교육을 받으면서 ‘보험정신’이 마음에 와닿았다. 보험이 이렇게 좋은 거라면 해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직장단체 전담사원이 어떤 건가?
“집집마다 방문하는 일반 주부판매사원과는 차이가 났어요. 한 회사를 정해 그 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영업을 했지요. 한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죠.”
그가 맡았던 곳은 동국건설과 효성물산 그리고 외국계 은행들. 나중에는 시중은행까지 영역을 넓혔다. 교육을 받을 때는 의욕에 넘쳤지만 막상 현장에 부딪혀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처음에는 잡상인 취급을 받아 들어가기조차 힘들었다. 거의 매일 찾아가다시피하며 그 회사 직원과 다름없이 되려고 노력했다. 돈을 아끼려고 4대문 안은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거의 걸어다녔다. 고객을 만나 설문을 받으면, 그 정보에 맞춰 고객 라이프 사이클을 일일이 손으로 그려야 했다. 지금은 컴퓨터로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한 장 그리는 데 30~40분 걸리는 작업이었다. 100장의 고객 설문을 받고 나니 고객 한 명이 나타났다.
“교육받은 대로 정말 열심히 보험이론을 고객들한테 설명했지요. 종합상사 직원들은 해외 바이어들도 자주 만나고 하다 보니 보험에 대해 빨리 이해를 했어요. 하지만 은행 사람들은 평생직장이란 생각에 굳이 보험을 들 필요를 못 느꼈어요. 자녀 등록금까지 은행에서 다 대주는데 직장만 열심히 다니면 된다는 식이었지요.” 여러 회사를 다니다 보니 자연히 산업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인수합병이 활발하던 미국계 은행들을 보고, 우리나라 은행도 언젠가는 저렇게 될거라고 예언을 했는데, 불과 10년 뒤 IMF 사태로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지요.” 보험의 필요성을 또 한 번 절감한 계기였다. 직장을 일종의 보험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더 이상 그런 시대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죠. 30대 초반 은행원이었는데, 아이가 백혈병에 걸렸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 갓 결혼한 30대 초반의 아빠가 무슨 돈이 있겠어요. 다행히 가족까지 다 되는 암보험을 들고 있어서 보험금 타고 치료를 열성적으로 충분히 해서 완치가 되었지요.” 병으로 보험금을 타는 고객들이 하나둘 늘면서 강 FP는 고객들끼리 환자 동호회를 만들 수 있도록 주선해주고 있다. 폐암환자는 폐암환자끼리 서로 정보를 나누고 의지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것이다.

- 주요 고객층은?
“IMF 이후 고액 연봉자, 고액 자산가 시장으로 방향을 조금씩 바꾸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관리하는 고객 수는 다소 줄었지만, 금액은 훨씬 커졌지요.”
그는 “이쪽 시장 개척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20년은 더 보험 일을 할 생각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한 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짜 가족처럼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분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 잘 파악해서 빈틈없이 해드리려고 노력해요. 대소사를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보험일이 아니더라도 가려운 곳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긁어주는 거죠. 이를테면 고객 집안에 노처녀가 있으면 신랑감을 찾아서 열심히 연결을 해주지요. 고객 풀(Pool)이 많고, 또 양쪽 집안을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강 FP는 그렇게 해서 지난해에도 2건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1년에 한 번씩 해외에 나가 있는 고객들을 찾아 ‘순방’을 떠나는 것도 강 FP의 독특한 영업 노하우. 해외 지점에 발령받아 나가는 고객 수가 많아지면서 시작했다. 지난해에도 미국과 유럽, 홍콩, 일본을 다녀왔다. “한번 찾아가면 고객들이 정말 반가워하지요. 선물을 주기도 하고, 모여서 식사도 같이 하고. 여기까지 도망왔는데 찾아와 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다고 농담도 하세요.”

- 고객 발굴은 어떻게 하나?
“요즘은 조금만 노력하면 고객을 발굴할 수 있는 통로가 아주 많아요. 저는 주로 신문을 활용하지요. 신문에 실리는 사람 이야기들은 저에겐 아주 유용한 정보죠.”
정 FP가 특히 관심을 갖는 건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인사들. “그런 분들은 일만 열심히 하기 때문에 자기관리에 소홀한 경우가 의외로 많아요.” 물론 만날 때는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선물’을 준비한다. 자주 이용하는 것은 사진. “신문에 좋은 인물 사진이 실린 걸 보면 직접 신문사에 연락해 사진을 구하지요. 그걸 멋있는 액자에 넣어주는거예요.” 그렇다고 한두 번 만남으로 보험을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보험을 꼭 팔아야한다는 목적의식을 앞세우지는 않아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경제의 흐름을 놓치지 말라

거액 자산가들의 재무 컨설팅을 하려면 경제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잦은 정 FP는 그래도 자정 뉴스와 새벽 6시 뉴스만은 빼놓지 않고 본다. 그래야 고객들과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매일 챙기지 않으면 어제 주식이 30 포인트 떨어졌는지 안 떨어졌는지 알 수 없어요. 부동산도 직접 투자를 하든 안하든 흐름을 알고 있어야지요.”
그는 2005년은 “한동안 쉬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일을 안했다는 뜻은 아니다. 신규 계약을 줄이는 대신 기존 고객들과의 관계를 다져나간 것이다. 그로써는 미래를 위한 일종의 투자였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올해 또 한 번 공격적으로 뛸 참이다. 그가 처음 만났던 고객들은 어느새 60~70대가 됐다. 이제는 3대를 관리해주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 한번 인연을 맺은 고객이 2세, 3세로 이어지고 있는 것. “20대에 처음 보험을 시작하면서, 고객들한테 이런 말을 하곤 했어요. ‘앞으로 20~30년 더 직장생활을 하실 텐데 보험 관리를 20대인 저한테 맞겨라, 저는 평생 관리를 해줄 수 있다’고요. 그때 한 약속을 지키는 게 저한테는 소중해요. 그것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지요.”
skjang@economy21.co.kr

by 꿀단지곰팅 | 2008/08/08 11:40 | Sales | 트랙백 | 덧글(0)

강진호, 비타민하우스 사장

장승규 기자의 영업왕 열전 ⑭/

“영업 3년차에 모든 걸 알았어요”

“먼저 상대방의 눈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일단 제 눈을 따라오기 시작하면 칼자루를 쥔 거나 마찬가지지요.” 31살의 젊은 사장은 거침 없이 자신의 영업 노하우를 풀어놓았다. 강진호 비타민하우스 S&G 사장이 처음 영업을 시작한 것은 24살 때인 1999년. 그는 군대에 자원입대한 이후 다니던 학교에 복학하지 않고 곧바로 영업전선으로 뛰어들었다. “복학할 형편도 아니었고, 하루라도 빨리 사회에 발을 담가 어떻게든 성공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강 사장은 약국과 병원 매점을 대상으로 드링크 제품을 파는 식품 대기업의 광주지역 대리점에서 출발했다. 바로 현재의 비타민하우스의 전신이다.

지도 들고 전국 돌며 약국 개척

2000년 8월, 강 사장은 당시 대리점에서 함께 일하던 김상욱 현 비타민하우스 사장과 함께 ‘비타민하우스’ 브랜드를 내걸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막 시작된 의약분업이 기회를 만들어줬다. 의약분업은 약국 시장에 큰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병원 처방전을 받기 위해 수많은 약국들이 병원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 비타민하우스는 식품영양학과 출신의 상담 영양사를 채용해 약국에 건강식품 코너를 설치하면 돈이 될 거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마침 서비스 차별화가 절실하던 약국들의 고민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광주 1호점을 시작으로 비타민하우스 가맹점은 빠른 속도로 불어났으면, 지금은 400억~5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탄탄한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비타민하우스는 약국과 병원에 4천개의 가맹점을 두고 있으며 전국 백화점과 할인점에도 진출해 있다. 강 사장은 지난 2005년 1월, 서울과 경기지역을 관리하는 자회사인 비타민하우스 S&G를 맡아 독립했다.

- 엄청난 성장 속도다.
“처음부터 이 사업이 성공할 거라고 믿은 사람은 없었지요. 일단 부딪혀 본 거죠. 다행이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광주전남지역에서 시작했는데, 약사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제대로 조직도 못 갖추고 전국 확대에 들어갔어요. 부산 경남을 거쳐, 마침내 2001년 7월경 서울에 입성했지요.”
강 사장은 “그동안 정말 미친 듯이 살았다”고 했다. 은행에 갈 시간도 부족해 제때에 공과금을 내본 적이 없다. 식사도 잠시 틈이 날 때 분식점에서 김밥을 사 차 안에서 먹는 게 고작이었다. “초기에는 영업사원이 저와 김 사장님 둘밖에 없었어요. 함께 차를 몰고 전국을 돌았지요. 저녁이면 숙소에서 지도를 펴놓고 다음 날 공략할 지역을 찾았죠. 앞으로 해야 될일 밖에 없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던 때였죠.” 약국 문을 두드리면 제품이나 운영시스템보다는 회사 설명을 먼저해야 했다. 그만큼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30~40군데의 약국을 도는 강행군이었다. 계약목표를 채우기 위해 약국이 문을 닫는 밤 12시까지 어디든 찾아다녔다. “숙소로 돌아오면 수십 장이나 되는 명함을 정리하는 것도 큰 일이었지요. 전부다 정리하고, 기록하고, 재방문이 필요한 곳을 나눠야 했어요.”

- 언제부터 영업에 자신감이 붙었나?
“3년쯤 되니까 모든 게 보이더군요. 상대의 주머니에 얼마가 있는지, 오늘 계약할 사람인지, 한 달 후에 할 사람인지. 카드로 할 사람인지 현금으로 할 사람인지. 그래서 그 후로는 계약률이 거의 100%였어요. 약국에 들어가서 계약을 안 하고 나오면 자존심이 상할 정도였지요. 한번은 3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한번도 말이 끊기지 않고 설득한 적도 있어요.”
물론 이런 자신감이 그냥 생기는 것은 아니다. 강 사장은 “병원장이든 약사든 운영상에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라며 “내가 그것에 대한 해결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전혀 주눅이 들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강 사장은 상대방의 눈을 당당하게 마주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허황된 말이나 한탕주의식 접근으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그동안 거쳐간 수백명의 영업사원을 보아왔기 때문에 고객이 오히려 한수 위지요. 진심으로 다가가 자신을 팔 수 있어야 해요. 눈만 제대로 쳐다보면 그 약사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신의 일을 뒤로 하고 내 말에 집중하게 되지요.”

- 스스로 생각하는 강점은?
“전에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영업에서 너무 적극적으로 나가면 상대가 부담을 갖게 되지요. 말에 강약이 필요한 것처럼 적절한 강약조절과 수위조절이 필수적이죠. 지금은 제 자신을 긍정하는 힘, 그런 게 강점 아닐까 싶어요.”
그는 항상 주문을 외운다고 했다. ‘나는 어떤 일을 해도 될거다’. ‘나만 열심히 하면 주위에서 분명히 도움이 올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혼자서 한 달에 1억2천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록을 세우면서 그는 이를 또 한번 실감했다. “그때는 정말 주체할 수가 없더군요. 그저 열심히 한 것뿐인데 주위에서 전화로 막 도움을 줘요. 다른 때는 매시간 매출정산을 항상 머릿속으로 하는데, 그때는 그게 불가능할 정도였지요. 비타민 1병에 2~3만원인데, 엄청난 양을 판 거죠. 그때 ‘꾸준히 노력하기만 하면 되겠구나’ 하고 다시 한번 느꼈죠.”
그는 영업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다고 믿고 있다. 고객 한 명 한 명한테 나중에 연락이 올 때, 거래처라는 관계를 떠나 일상생활에서 오는 다뜻한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때를 특히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에게 고객은 형님이나 동생, 누나이면서, 아버지나 엄마 같은 존재다. 강 사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으로 회사 근처에 있는 한 약국을 꼽았다. “서울에 처음 입성해 김 사장님과 둘이 바로 이 근처에서 합숙생활을 했어요. 그냥 드링크류를 마시러 가곤 했는데, 비타민하우스를 잘 알고 계시더군요. 물론 고객 소개도 많이 해주셨지만, 항상 밝게 웃고 함께 기뻐해주시는 모습이 좋아요. 아마 이 동네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문을 닫으시는 것 같아요.”

영업 현장 떠난 지금이 오히려 슬럼프

강 사장은 그동안 영업을 하면서 슬럼프를 겪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사장이 된 지금이 슬럼프라며 웃었다. 그만큼 그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들어났기 때문이다. 강 사장은 요즘 온라인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있다. “일반 병원과 약국의 환자 수가 굉장히 많이 줄어드는 상황이지요. 경쟁이 치열해져 조금만 잘된다 싶으면 거침 없이 옆으로 치고 들어와요. 작은 동네에도 약국이 5~6군데 있는 게 보통이죠. 이제는 오프라인에서 동네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한계가 왔다고 봐요.” 강 사장은 지난 2월부터 약국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쇼핑몰 개설 영업을 추진하고 있다. 약사들이 온라인상에서 직접 1대1 상담을 해주면서, 건강기능식품을 함께 판매하는 형태다. 두 달밖에 안 됐지만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강 사장은 “벌써 전체 매출의 절반은 온라인이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비타민하우스 특유의 추진력과 스피드가 또 한번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강 사장의 영업 비법

강 사장은 사람을 판단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상대의 외모다.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 등 인상착의를 보면 어느 정도 상대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대화에서 많을 걸 얻을 수 있다. 강 사장은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과 나중에 대화를 하면서 파악해낸 걸 비교해보면 대부분 어긋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했다. 그만큼 외모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강 사장이 직원들에게도 항상 깔끔한 옷차림을 강조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또한 강 사장은 가능하면 심리학 책을 자주 보려고 노력한다. 사람의 성향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혼자 상대의 심리를 마음속으로 그려보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렇게 외모와 대화를 통해 파악한 정보를 종합하면 대부분 어떤 사람인지 거의 정확하게 알 수 있어요.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지, 아니면 굉장히 소심하고 아끼는 유형의 사람인지. 후자의 경우라면 절대 그날 계약을 못하죠. 생각을 오래 해보고 나서야 결정을 하기 때문이죠.” 강 사장은 좀더 여유가 생기면 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고 했다. “졸업장보다는 내가 얼마만큼 아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대학에 가서 심리학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by 꿀단지곰팅 | 2008/08/08 11:34 | Sale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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